정규 앨범 < Home
작곡가 이승규
작곡가 이승규 정규 2집, 광주(光州)
클래식
㈜디지탈레코드
㈜디지탈레코드
2018.10.31
01.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정추, 1923-2013' 1악장 Andante
02.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정추, 1923-2013' 2악장 Allegro agitato
03.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1곡 펭귄마을
04.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2곡 충견상
05.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3곡 이장우 가옥
06.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4곡 한희원미술관
07.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5곡 충현원
08.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6곡 김현승 시비
09.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7곡 순교자 묘원
10.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8곡 우일선 선교사 사택
11.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9곡 커티스메모리어홀
12.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10곡 호랑가시나무
13.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11곡 수피아홀
14.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12곡 오웬기념각
15.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1곡 국화 옆에서
16.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2곡 양림동의 별
17.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3곡 눈물
18.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4곡 봄비
19. 가곡 ‘월봉, 브로맨스’ 1곡 석별의 정
20. 가곡 ‘월봉, 브로맨스’ 2곡 퇴계 선생의 장례날에
21. 가곡 ‘월봉, 브로맨스’ 3곡 재회
22. 가곡 '광주의 노래' 1곡 춘산에 불이나니
23. 가곡 '광주의 노래' 2곡 무등산 소리따라
24. 가곡 '광주의 노래' 3곡 광주여 영원하라


작곡가 이승규

- 작곡가 이승규 정규 2집, 광주(光州) -




안녕하세요. 작곡가 이승규입니다.

이번 2집 음반의 제목은 ‘광주(光州)’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은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도 맞물린,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인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살아온 저에게

광주는 늘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이 음반에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여간 직접 광주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작곡한 24곡의 음악을 담았습니다. 광주에 대한 애정과 그 아름다움을 음악을 통해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 음악들이 정의를 지향하는 광주의 역사, 고귀한 사상, 아름다운 문화 예술의 향기를

다시 새롭게 느끼고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작곡가로서 음악을 듣는 분들께 부탁을 드립니다.

1. 음악을 듣기 전, 곡 주제와 내용에 대해 먼저 숙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2. 각자의 해석(작곡가의 입장, 연주자의 입장, 본인의 입장)을 고민하신다면 보다 깊이 있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3. 어떠한 선입견도 버리고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순수함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여 광주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rack Review]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정추, 1923-2013’
Violin_이수산, Piano_김지현

정추는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1952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원으로 유학을 간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3대(代) 제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졸업 작품인 오케스트라 ‘조국’으로 음악원 사상 최초의 만점 졸업생이 되었다.
정추는 1957년 모스크바 북한유학생들의 김일성격하운동을 주도한 이래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망명, 카자흐스탄
국립여성사범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곳에서 고려인 집단농장인 꼴호즈를 찾아가 한민족의 음악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민요 1,000여 곡을 채보함으로써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려인 가요를 보존 계승하는
음악인류학의 길을 개척했다.
‘정추, 1923-2013’은 작곡가 정추에게 전하는 음악적 헌사다. 이 곡은 정추 추모음악회를 위해 위촉을 받은 것으로
정추의 인생과 그 역정을 생각하며 작곡했다.

1악장 Andante (느리게)
작곡가 정추의 작품 중 가곡 김소월 작시, ‘가는 길’의 주선율을 바이올린 곡으로 재탄생했다. ‘가는 길’ 중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는 가사가 있다. 정추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조국과 가족이 그립지만
이념과 정치적 현실에 부딪혀 그립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1악장은 정추의 그리움에
바이올린의 서정성이 묻어나게 하고 싶었다.

2악장 Allegro agitato (빠르고 흥분하듯)
이념에 휩싸여 버린 그의 인생과 음악에 대한 열정, 조국에 대한 그리움, 통일의 염원을 2악장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12개의 모음곡 ‘양림의 거리’
Piano_이승규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에 완성한 곡으로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의 건축물과 자연을 보며 작곡한 곡이다.
양림동의 다양한 문화적 결합이 새로운 완전체를 이룬다고 생각하며 12곡을 작곡했다.
곡 순서는 동선에 따라 정했다.

1곡 펭귄마을
양림동 오거리 바로 옆에 위치한 펭귄마을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마을로 3년 전 펭귄마을 촌장 김동균 씨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낸 곳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는 펭귄과 같아
‘펭귄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펭귄을 연상하며 귀엽고 발랄한 분위기로 작곡했다.

2곡 충견상(忠犬像)
충견상은 광주 정씨 8세손 양촌공 정엄 선생이 기르던 개를 기리며 만든 상이다. 이 개는 한양과 평양 등지에서
감사를 지내던 정엄 선생의 아버지와의 연락은 물론, 한양과 지방 사람들과의 문서 수발 등 신속한 통신 연락
업무를 해냈기로 유명했다. 어느 엄동설한에 정엄 선생이 급한 일로 개가 새끼 날 때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만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냈다고 한다. 개는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었고 주인이
살고 있는 곳까지 한 마리씩 나르기 시작하였는데, 마지막 아홉 마리째 새끼를 나르다 그만 지쳐 죽고 말았다.
정엄 선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개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개의 상을 조각하였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곡은 주인과 강아지의 애틋한 우정을 상상하며 작곡했다.

3곡 이장우 가옥
1899년 정병호 선생이 지은 가옥으로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만석꾼’의 집이었다. 당시 그랜드 피아노가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의 조카였던 정추 선생이 이곳에서 음악을 접하게 되어 ‘차이코프스키의 4대 제자’
라는 칭호를 얻으며 ‘검은 머리의 차이코프스키’로 불렸다. 가옥의 이름은 이장우 선생이 1968년에 이 집을
사들이게 되면서 붙여졌다. 이 곡은 문화와 음악이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곡했다

4곡 한희원미술관
양림동에 위치한 한희원미술관은 2015년에 개관하였다. 화가이자 시인인 한희원은 광주 출생으로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했다. 유년 시절 언덕 위 교회당이 보이는 양림 마을에서 배우고 자랐으며,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존재의 근원을 묻는 서정적인 회화들로 우리들에게 깊은 위로를 안겨 준다. 이 곡은 한희원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양림동에 대한 정서가 묻어난 그림을 보며 작곡하였다.

5곡 충현원
한국전쟁 고아들의 보금자리로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5월 故 박순이 선생에 의해 창립되었다.
선교사들과 고아들이 거주하였고 현재는 호남사회봉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곡은 충현원에서 깊은 잠을 자는
아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장가로 작곡하였다.

6곡 김현승 시비
다형 김현승은 7살 때 양림동에 정착해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심을 키웠고 숭실전문학교에 다니며 1934년에
등단했다. 조선대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호를 다형(茶兄)이라고
지을 만큼 생전에 커피를 즐겼으며 ‘고독의 시인’으로 감수성 짙은 시를 발표했다. 이 곡은 고독과 가을,
커피를 즐기던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을 생각하며 고독하고 깊이 있는 곡으로 작곡하였다.

7곡 순교자 묘원
양림산에 위치한 순교자 묘원은 1895년 한국 선교사로 들어와 나주, 목포, 광주에 선교부를 세우고 30년간
한국 복음화를 위해 살았던 유진벨(배유지) 목사의 묘를 비롯해 한센병 치료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오웬 선교사 등 22명의 미국 남장로교 출신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가 있다. 이 곡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삶을
기리고 추모하는 의미인 장송곡으로 작곡하였으며 마지막 부분은 아멘종지(Ⅳ-Ⅰ도)로 끝이 난다.

8곡 우일선 선교사 사택
양림산 기슭에 세워진 2층 벽돌 건물로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미국 이름, Wilson)이 1920년에 지은 집이다.
이 사택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 건물이다. 우일선 선교사는 당시 천벌로 여겨지던
한센병(문둥병, 나병) 환자들을 가족처럼 보살폈다고 한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우일선 선교사와 그 사택은 천국처럼 따뜻한 곳이었을 것이다. 환자들의 가족보다 더 극진하게 환자들을
보살펴 준 파란 눈의 천사. 감사와 따뜻함을 담아 작곡하였다.

9곡 커티스메모리얼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배유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1925년에 건립되어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예배당으로 이용되었다. 현재는 예수피아교회로 쓰이고 있다. ‘전남 지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교사 배유지는 1895년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목포선교부와 광주선교부를 창설하였다.
광주전남 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 광주에는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최초의 병원인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설립하였다.
유진벨의 희생과 광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작곡하였다.

10곡 호랑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7호로 수령은 약 400년 된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도 진초록 잎을
바탕으로 새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 성탄절에 사용되며 서양에서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불려진다.
이 곡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호랑가시나무의 신비로움을 담아 작곡하였다.

11곡 수피아홀
1908년 선교사 유진벨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수피아 여학생들은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며 일본군 앞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흔들다가 3•1운동 이후 일시 폐교되었고, 1929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무기 휴교,
1937년에는 신사 참배 거부를 이유로 폐교되었다. 그러나 1945년 조국의 광복과 동시에 복교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광주의 항일운동 성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곡은 일제 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받쳐 독립운동을 하였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심정을 담아 작곡하였다.

12곡 오웬기념각
선교사 오웬은 1900년대에 광주에 들어온 양림동의 서양촌 외국인 중 한 명으로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선교 및
의료 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과로로 1909년에 죽게 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의미에 지어진 오웬기념각은 개화기
당시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릴 만큼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이곳에서 광주 최초로 클래식
공연이 열렸다. 이 곡은 다양한 문화와 만남이 어우러지는 오웬기념각을 생각하며 화려하고 강렬한 곡으로 작곡하였다.


가곡 ‘양림, 시인의 마을’
Tenor_장호영, Piano_김지현
양림동에서 활동한 시인들의 대표 작품을 모아 가곡을 작곡하였다.

1곡 국화 옆에서 (서정주 작시)
광복 이후 김현승 시인의 권유로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미당 서정주는 이곳 양림동 근처에 살면서
‘무등을 보며’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국화는 9, 10월이 개화시기로 이 시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1연의 소쩍새, 2연의 천둥, 4연의 무서리 등으로 계절에 따라 나열하고 오랜 방황과 번민을 통해 지난날을
자성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으로 표현하여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인격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2곡 양림동의 별 (한희원 작시)
‘양림동의 별’은 입김과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처럼 양림동의 풍경과 사람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시이다.

3곡 눈물 (김현승 작시)
시인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죽음의 세계로 보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그 아픔과 슬픔을 종교적 믿음으로
견디면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통해, 우리 인간은 기쁨보다는 슬픔 속에서
성숙한다는 인간의 삶에 내재된 역설을 깨닫는다.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적 삶의
한계이다. 이 한계에 부딪혀 절대적 존재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인간의 영혼을 맑게 씻어 주며, 진정한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4곡 봄비 (이수복 작시)
이수복의 시는 민요적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한국적 서정의 세계를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켜 1950년대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봄비’는 머지않아 다가올 아름다운 봄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사별한
임에 대한 애잔한 슬픔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가곡 ‘월봉, 브로맨스’
Tenor_장호영, Piano_김지현

퇴계 이황의 나이 58세, 고봉 기대승의 나이 32세, 둘은 1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2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실제 대면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학자들은 전한다. 그토록 많은 편지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었을까? 성리학의 큰 영향을 미친 사단칠정논변으로, 8년이라는 시간동안 논쟁이 계속되고 이런 논쟁을 통해
성리학의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퇴계와 고봉은 26년이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경하는 스승’과
‘최고의 제자’라며 끝까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지켰다.
작곡가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브로맨스(남자의 우정)라는 주제로 작곡하였다.

1곡 석별의 정
선조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을 받은 퇴계는 1569년 3월 4일에 한양을 떠난다. 고봉이 한강가에서 유숙하며
봉은사까지 퇴계 선생을 배웅하며 배가 떠나려 할 때 주고받은 시이다. 이 곡은 한강이라는 공간의 물결치는 모습과
함께 둘의 깊은 우정을 상상하며 작곡했다

2곡 퇴계 선생의 장례날에
퇴계는 70세에 157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난다. 퇴계 이황의 장례가 있던 날 고봉은 멀리서나마 여러 제자들과
함께 무등산 규봉에 올라 이 시를 지었다. 고봉은 퇴계가 없는 세상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이 곡은 고봉의 절망적이고 한스러운 모습을 연상하며 작곡했다.

3곡 재회
고봉 선생은 퇴계 선생과 헤어진 후 꿈에서도 자주 퇴계 선생을 만났다. 광주로 낙향하여 인생살이 생각을 하니
퇴계 선생이야말로 자기를 가장 아껴주는 분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강에서의 이별 후로 자주 꿈속에서
퇴계 선생을 뵈었다고 한다. 이 곡은 몽환적인 꿈속 모습의 피아노 전주, 반복되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그리움이
묻어나는 선율로 작곡했다.


가곡 ‘광주의 노래’
Baritone_권용만, Tenor_장호영, Piano_김지현

1곡 춘산에 불이나니 (김덕령 작시, 정형균 개사)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조좌랑으로 전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20대 나이에 홍익장군이란 칭호를
하사받았으며, 이에 왜군이 호남 육지에 감히 범접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왜군과 내통하였다는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고문을 당한 후 30살의 나이에 옥사하게 된다. 이 시조는 옥중에서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지은 시조다. 이 곡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충신이지만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된
자신의 억울함과 답답함 심정을 담아 작곡하였다.

2곡 무등산 소리따라 (김종천 작시)
무등산의 명물, 입석대와 서석대, 규봉은 기이한 암석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어 무등산의 삼경으로
꼽힌다. 산의 형세는 둥글며, 사람을 품어 주고 나무를 길러 내는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무등산의 아름다움과
예향, 광주 정신을 담은 시이다.
이 곡은 높고 낮음이 없는 무등(無等)의 의미와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3곡 광주여 영원하라 (이지원 작사)
광주는 강하다. 따뜻하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다. 절실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 된 광주는 많은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었고 하늘에서는 무등산이 있는 광주를 밝은 빛으로 비추었다. 곧은 믿음과 애틋한 사랑은
광주에서 시작되었고 온 누리에 전해져 영원토록 찬란할 것이다. 이 곡은 광주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긍지,
세상을 향한 사랑과 밝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표현했다.


[Credits]

Producer 이승규

Baritone 권용만
Tenor 장호영
Violin 이수산
Piano 김지현, 이승규

Recorded at Feelosophy Recording Studio
Recording Engineer by 동맥PD, 임사장
Mixed at Feelosophy Reocording Studio
Mixing Engineer by 동맥PD
Mastered at Sidera Mastering Studio in Dokyo

CD cover Design 임고운
All Photo by Simon Lim (임태성)
CD Pressing CD Maul (비쥬얼에디션)